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(문단 편집) === 난무하는 모차르트 관광지 === 모차르트는 [[베토벤]]과 더불어 관광지와 기념관/박물관을 마구 양산하는 작곡가로도 유명하다. 25년이나 살았던 그의 생전에는 별로 관심을 주지 않았던 [[잘츠부르크]]가 정작 그의 사후에는 ''''모차르트의 고향''''이란 이름으로 매년 막대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. 모차르트가 이 작은 도시 하나 벗어나려고 엄청나게 발버둥 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. 여튼 국제 모차르트 재단 본부도 여기 있으며 [[음악대학]]의 이름은 아예 [[라틴어]]로 모차르테움(Mozarteum)이라고 지었다. 잘츠부르크가 모차르트의 도시가 되면서 애처러운 입장에 놓인 사람이 있는데, 바로 전술한 요제프 하이든의 아우인 미하엘 하이든(1737~1806). 그는 잘츠부르크를 떠나지 못해 안달을 냈던 모차르트와 달리 무려 43년간 잘츠부르크에서 충성스럽게 음악활동을 했고, 잘츠부르크에 있던 시절의 천방지축 모차르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작곡가였다. 당시 콜로레도 [[대주교]]가 모차르트를 별 망설임없이 내쫓았던 것도 미하엘 하이든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.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으며 심지어 [[잘츠부르크]] 시민들 상당수도 제대로 모르고 있을 정도다. 하긴 하이든이라면 형 요제프 하이든은 유명해졌지만 미하엘 하이든은 웬만한 사람은 모르는 판국이긴 하다. 조국 오스트리아나 잘츠부르크도 이러는 판국. 이러다보니, 현재 잘츠부르크에는 미하엘 하이든 기념관이나 박물관은 고사하고 그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찾기 힘든 지경인데 좀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. 혹시 잘츠부르크를 방문하는 모차르트 팬이 있다면, 모차르트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미하엘 하이든에게 마음 속으로 안부라도 전하고 오자. 일전에 잘츠부르크는 [[올림픽|동계 올림픽]] 유치를 신청했다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 때에도 캐치프라이즈는 '모차르트의 고향'이었다. 이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에 관련된 기념품 이것저것 많은데 특히 모차르트 [[초콜릿]] 혹은 모차르트 봉봉이라고 불리는 '''[[모차르트 쿠겔]]'''이 유명하다. 1890년 파울 퓌르스트(Paul Fürst)라는 사람이 개발한 초콜릿으로, [[http://original-mozartkugel.com|오리지널 모차르트 쿠겔]]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내수공업으로 [[장인정신|하나하나 만들어지며]] 미라벨이나 레버 등 다른 브랜드에서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도 있다. 물론 오리지널은 잘츠부르크 현지에서만 살 수 있고 국내에서 많이 보이는 모차르트 얼굴 찍힌 초콜릿은 다 미라벨 같은 데서 만든 유사품이다. 모차르트에 대한 지분(?)을 요구하는 또 하나의 도시가 바로 [[프라하]]. 현재 프라하는 모차르트가 머물렀거나 다녀간 곳이 모조리 박물관이나 관광지가 되어 있다. 실제로 생애 후반에 모차르트는 오히려 빈보다 프라하에서 더 각광을 받았고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비롯해서 교향곡 제38번(일명 프라하)이나 오페라 티토 왕의 자비 등의 중요한 작품들이 프라하에서 초연되었다. 심지어 모차르트 사후 빈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던 반면, 모차르트가 죽은 지 일 주일 후 열린 최초의 추모식도 프라하에서 수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을 정도다. 현재에도 프라하는 모차르트 생전부터 그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준 도시였다는 이유로 '모차르트 도시'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.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도 대부분 프라하에서 이뤄졌다. 한편 [[독일]] 남부의 [[로텐부르크]]에서도 해마다 음악회가 벌어지는데, 이곳은 모차르트와 인연이 딱 하나 밖에 없다. '''모차르트의 여행 도중 마차의 말을 갈아타기 위해 [[커피]] 한 잔을 마시고 떠났다는 것.''' 실제로 이곳은 잘츠부르크가 인접한 오스트리아의 국경과도 가까운 동네이기도 하다. 독일 남서부 [[만하임]]에 있는 [[예수회]] 성당에는 모차르트가 이 도시에 며칠 거주하는 동안 [[미사]]를 드렸다는 표지석이 붙어 있다. 그런데 각 도시들의 이런 눈물겨운(?) 노력을 우습게 보는 도시가 있었으니 바로 빈. 당연히 빈에도 모차르트와 관련된 기념시설들이 넘쳐난다. 또한 모차르트 외에도 베토벤, 슈베르트 등 세계 음악사를 빛낸 여러 대작곡가들이 모두 빈에서 주요 활동을 펼쳤다. 때문에 아마 만하임이나 로텐부르크 수준으로 이들이 거쳐간 곳을 마구 기념했다가는 아예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 되 버릴 것이다. 사실 유명인이라면 이런 게 흔하다. [[베토벤]]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베토벤의 고향 [[본(독일)|본]]과 일생 대다수를 살다가 간 빈이 서로 베토벤의 고향이라며 홍보하듯이 모차르트나 슈베르트,하이든 등등 유명 음악가들도 여러 도시가 이렇게 홍보한다. 1991년, 그의 사망 200주기를 기념하여 전세계적인 모차르트 열풍이 불어닥쳤다. 우리나라에선 [[남양유업]]의 꼬모란 유산균 [[요구르트]] 광고에 모차르트의 초상을 CG로 입히며, [[아마데우스(영화)|영화 아마데우스]]에서 모차르트를 연기했던 [[배한성]]의 '모차르트도 넘어간 맛'이라는 나레이션까지 삽입된 광고까지 나왔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